죽음에 대한 생각 나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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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의 대면
죽음 태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준비되지 않은 시각에 찾아온다. 이 부분이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지니도록 하는 이유다.
타인의 죽음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장애 없이 인정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분노를 일으키고 우울함을 가져오며 인생에 대한 회한을 불러일으킨다.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죽을 사(死)’와 비슷한 숫자 ‘4’를 사용하는 것을 기피하는 한국에서는 더하다. 죽음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도망하기 바쁜 지금에 이를 제대로 알리고 이해시키는 것은 괜한 짓인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족의 죽음마저도 무대 위 배우를 바라보는 것처럼 멀찍이 지켜보고만 있는 장례식에서 ‘추모(追慕)’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장례식에 아이들과 동행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는가? 죽음에 대해 질문하는 아이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며 핀잔을 준적은 없는가? 가족의 장례라면 응당 참석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많은 사람이 꺼려한다. 이렇듯 죽음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어 겪는 주변 사람들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 되어 삶을 급변하게 만든다.
이따금 심폐소생술거부서(DNR)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조차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재수 없게 그런 얘길 하느냐며 힐난(詰難)하는 경우도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이루진 것이 없이 임종을 맞다 보니 죽은 사람이 원했던 장례가 무엇인지를 몰라서 지나치게 비싼 비용을 들여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비싼 장례식을 고인에 대한 정성으로 착각하며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고인의 평안을 핑계 삼아 유족들에게 호화스런 장례식을 치르게 하여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출하도록 하는 업체들도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죽음에 대한 이런 회피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은 아니다. 프랑스 역사학자 아리에스(Phillippe Aries, 1975)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죽음에 대한 태도가 상당히 부정적이고 혐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 『죽음에 대한 서양의 태도 : 중세에서 현대까지(Western Attitudes toward Death from the Middle Ages th the Present)』에서 서양의 경우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순화된 죽음’에서 ‘터부시된 죽음’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도시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현대인들은 삶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게 되면서 가정에서 환자 또는 노인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병원이나 시설에 맡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과 격리된다. 이로 인해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생명의 자연적 결과인 ‘죽음’이 생경하게만 느껴지게 됐다.
한편, 의학과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간의 죽음을 몇 개월에서 몇 년을 연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인문, 철학, 종교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노력은 줄어들게 되었고 안락사, 조력자살, 장기기증, DNA조작 등의 의학적, 과학적 기술에 몰두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개인주의, 경쟁이 만연한 시대가 되면서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는 삶이 되었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특성은 현대인으로 하여금 죽음을 회피하고 부정하려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준비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당사자와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기게 된다.
죽음을 생각해야 지금의 삶을 더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 적어도 영생할 듯 살아가는 시간보다 더 가치 있는 일에 시선을 돌일 수 있다.
당신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권석만,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학지사, 2019, 386-390.